이세계는 평화 한화・피어 ~ 속죄의 시작 ~
용자 소환에 말려들었는데, 이세계는 평화로웠습니다
한화・피어 ~ 속죄의 시작 ~
경장 갑옷으로 몸을 감싸고, 크게 어깨로 숨을 쉬는 소녀의 앞... 그림자 하나가 무너져내렸다.
"...해...냈나...?"
아직도 자신의 승리가 실감나지 않는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지, 소녀... 히카리는 줄곧 원해왔던 숙적 타도를 성공했는데, 가라앉은 표정인 채로 있었다.
"잘 했다, 히카리! 드디어 이뤄냈구나"
"...이제, 일어나지 못할 거다. 너의... 아니 우리의 승리다"
"그건 상관 없는데, 나 보물전에 중요한 볼 일이 있으니까, 거기 가도 될까?"
"라그나, 포르스... 하프티는 좀만 자중해 주세요"
함께 고락을 넘고 여기까지 도달한 동료들의 말을 듣고, 히카리는 드디어 어깨의 힘을 뺐다.
하지만, 역시 그 표정은 가라앉은 채였다.
"잔당 처리도 해야 하겠지만... 이걸로 일단락..."
"...라그나"
"뭐지? 히카리? 표정이 좋지 않구나"
"...마왕은... 정말로, 사악한 존재였던 걸까요?"
"...뭐라?"
툭 흘러나온 말. 그건, 용자라고 불리며 여기까지 싸워온 그녀가... 마지막 적인 마왕을 쓰러뜨린 후에, 품은 의문이었다.
히카리는 의아한 표정을 하는 라그나를 보고, 스스로도 아직 사고가 정리되지 않았는지 자신 없게 입을 열었다.
"...다들, 봤죠? 여기 오기까지 거리나 마을... 확실히 일부에서는 심한 살육이나 약탈도 있었어요. 하지만..."
"...태반은 평화... 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을 괴롭히는 일은 없었어"
히카리의 말에 짐작 가는 곳이 있었는지, 엘프족 마도사... 포르스도 생각이 깊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네. 게다가, 이 성에서 발견한 포로도... 제대로 포로 취급을 받고 있었어요"
"...음, 확실히, 이성 없는 괴물은 아니었다는 건, 나도 이해하고 있고... 방금 싸움도, 정정당당한 것이었지... 허나..."
"...그것 뿐만이 아니에요. 그 마왕의 눈은... 결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싸우는 자의 눈이 아니었어요... 누군가를 위해 칼을 휘두르는 듯한, 그런 강한 결의가 있고... 그래서, 조금 마음에 걸려요"
히카리의 말을 듣고, 그녀의 동료들도 복잡한 표정을 했다.
확실히 히카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고, 들어보면 납득도 됐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자고 하면 답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
"""!?"""
직후에 '하프티를 제외한 세 명'은 마왕이 쓰러진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느샌가 거기에 나타난 압도적인 존재의 기척을 느끼고...
"...피어, 어째서... 이런 일을..."
"...크...롬...님"
갑자기 나타난 소녀는, 천천히 쓰러진 마왕을 안아 일으키고, 눈에 눈물을 흘리며 그 이름을 불렀다.
마왕도 아직 살짝 의식이 있었는듯, 소녀의 부름에 살짝 눈을 뜨고, 쉰 목소리를 냈다.
"...피어가... 죽어버리면, 어떡해... 나, 싫어... 슬퍼"
"...아, 아아아... 크롬님... 저, 저는..."
"미안해... 내가 제대로 말을 안 해서... 그래서, 피어는..."
"아, 아닙니다... 저는, 제 의지로... 제가... 아, 아아아... 크롬님, 우시다니... 저...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피어에게 말을 거는 크롬에이나, 그 모습을 보고... 아니, 크롬에이나가 나타난 순간부터, 히카리 일행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눈도 깜빡이지 못했다.
"...뭐...냐... 저 '괴물'은..."
라그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쥐어짜내듯 말했다. 히카리도 포르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들은 마왕을 쓰러뜨렸다... 마왕은, 그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너무나도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어, 정말 사투라고 불릴 싸움 끝에 힘들게 이겼다.
하지만, 무슨 농담이냐 하고 외치고 싶어지지만, 지금 눈 앞에 나타난 소녀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마왕이 아기로 보일 정도로 압도적인 것이었다.
히카리 일행에게는 정말 절망일 것이다. 이 존재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그녀들의 본능이, 너무나도 강하게 외치고 있다.
하지만 크롬에이나는 그런 히카리 일행을 보지도 않고, 피어와 몇 번이나 말을 주고받고... 피어가 정신을 놓은 후로, 마음 아픈 듯 눈을 감았다.
그 직후, 성의 천장이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고, 너무나 거대한 용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 뿐만 아니라, 나무와 일체화된 여성, 옅은 빛을 두른 소녀, 타오르는 불의 거수, 얼굴이 보이지 않는 로브를 입은 존재... 여섯의 압도적인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아아..."
그건 대체 누가 낸 목소리였는지... 절망 위에 더 큰 절망이 겹쳐진 듯한...
그런 그녀들 앞에, 크롬에이나는 천천히 눈물을 닦고 일어났다.
"...처음 보는구나, 인계 용자. 내 이름은, 크롬에이나... 잠깐, 우리 얘기를 들어줬으면 해"
아름답게 울리는 그 목소리는... 확실히, 왕으로서의 위엄이 흘러넘쳤다.
"...꼭, 가야 하나요?"
"...네"
마계의 존재가 용자를 통해 인계에 전해져, 마계와 인계의 휴전 협정이 맺어지고 몇 개월 후... 치료로 상처가 나은 피어는, 인계와의 대화로 바쁜 크롬에이나를 만나지 않고 떠나려고 했다.
그걸 배웅하는 아인의 표정도 좋지 않다.
"...크롬님은, 그걸 바라지 않으실텐데요?"
"그래도, 저는 이제... 크롬님을 볼 면목이 없어요"
"...그런가요"
치료를 겸해 크롬에이나에게 진실을 들은 피어는... 드디어, 자신의 큰 잘못을 알아챘다.
그리고, 깊이, 깊이 후회했다... 하지만, 아무리 후회해도 그녀에게 시간을 되돌리는 방법은 없다.
자신의 잘못, 자신의 죄... 마음을 불태우는 불꽃을 받아들여, 등에 짊어져야 한다고, 그렇게 이해했다.
아인에게 깊이 고개를 숙이고, 피어는 가족들의 곁에서 떠났다.
크롬에이나는, 그녀의 가족들은... 모두 피어 편을 들어준다. 지켜주려고 한다... 지금의 그녀에게는, 그게... 가족들의 상냥함이, 너무나도 아프고 괴로웠다.
두 번 다시 사랑하는 가족들 곁으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게 벌 중 하나라고 자신을 설득하며, 끝없는 속죄의 여행을 떠나려고 하는 피어 앞에, 하나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샤르티아님..."
"...말해 둘게요. 저는 마계에 혼란을 불러온 당신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당신이 '인간의 목숨을 빼앗지 않도록 억제'했다고 해도, 당신이 불러온 바보들의 잘못의 책임은 당신에게 있어요"
"...네"
"원래라면 저는 당신을 죽였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고개를 숙이고 '제발...'이라고 부탁한 쿠로씨 얼굴을 봐서, 한 번만 당신을 용서하겠습니다"
샤르티아는 육왕 중에서도 유일하게 최후까지 피어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녀에게도 가족에 대한 정은 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그것도 버린다. 기본적으로 개인보다 전체를 택하는 그녀는, 이번 일을 납득은 안 했다.
하지만 눈물을 보이며 자신에게 피어를 용서해달라고 비는 크롬에이나의 탄원을 무시할 수도 없고... 한 번만, 넘어간다는 답을 내렸다.
"...하지만, 다음은 없습니다. 다음에 당신이 세계에 혼란을 일으키는 짓을 한다면, 그 때는 제가 당신을 죽일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샤르티아님"
"이상한 아이네요. 다음에는 죽인다고 했는데 고맙다고요?"
"...지금의 저는, 당신의 엄한 말이, 정말 기뻐요..."
"..."
근본적으로 자신은 용서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는 피어에게, 가족들의 상냥함은 고통스럽고... 샤르티아의 엄한 경고는 기뻤다.
그걸 입에 담은 후 고개를 숙이고, 그 장소를 떠나가는 피어의 등에 샤르티아는 말을 걸었다.
"...당신이 가려는 길 끝에, 구원은 없어요"
"...알고 있습니다. 그게 좋아요... 그게, 나아요"
어쩌면 피어가 자신의 죄로부터 도망가는 약함을 가지고 있었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어는 자신의 죄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죄를 죄로 받아들이고, 평생에 걸쳐 갚는 것을 강하게 맹세했다.
"...애초에 '누군가가 강제로 당신을 그 길에서 끌어낸다'면... 당신의 속죄를 인정하고, 그러고도 당신의 행복을 바라는, 기적적인 존재라도 나타난다면... 결과는 바뀔지도 모르겠네요"
피어가 보이지 않게 된 후, 샤르티아가 중얼거렸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그녀가 아는 한에 피어를 구해줄 존재는 없다. 그 용자 소녀로도 무리겠지... 그 소녀는 이미, 피어와 대치할 수 없다.
혹시 피어를 구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녀의 죄를 모두 알고, 인정한 후에, 지금의 그녀를 존중하고 구하려고 하는... 그런 존재 뿐.
현 시점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도 계속 갖고 있는 기적을, 떠나가는 가족에게, 조금만 기도하고... 샤르티아는 모습을 감췄다.
그렇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