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는 평화

이세계는 평화 196화

레이빈 2018. 1. 22.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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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자 소환에 말려들었는데, 이세계는 평화로웠습니다 

196화 : 페이트씨는 여전해




처음 방문하는 신계는 매우 신선한 광경으로 나를 맞이해줬다.

하층은 뭔가 인계 마을을 떠올리게 하는 구조인데, 몇미터는 돼 보이는 거대한 꽃이나 공중에 떠 있는 호수 같은 게 환상적으로 펼쳐져 있었다.
중층은, 귀족이 사는 주택가 같은 인상인데, 하얗고 아름다운 건물이 늘어서 있고 곳곳에 전에 본 라이트 트리 비슷한 나무가 자라 있어, 전체적으로 옅은 빛에 감사인 것 같다.

그리고 그 두 대지에서 더 위, 시로씨가 사는 신역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위치에 잇는 대지... 상층에 도착했다.
상층은 녹색 융단 같은 잔다기 쫙 깔려있는 대지로, 하늘에는 낮인데 유성처럼 보이는 많은 빛이 흐르고 있어, 장엄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시선 끝... 더욱 높은 상공에 보이는 신역에 가장 가까운 위치, 도너츠형 대지 끝에는, 3개의 거대한 신전이 신역을 둘러싸듯 배치되어 있다.
하나하나가 마치 성처럼 커서, 상당히 거리가 있는 여기서부터가 아니면 전체 모습을 파악할 수도 없다.

그리고 크로노아씨 제안으로 시로씨에게 가기 전에 페이트씨와 라이프씨 신전을 방문하기로 해서, 일단은 가장 가까이 있는 페이트씨 신전으로 향했다.
여기 들어갈 수 있는 건 최고신과 그 부하 뿐만이라는 건 정말인 듯, 하층이나 중층에서 봤던 다른 신족들의 모습이 전혀 없다고 해도 될 정도로 보이지 않았다. 넓은 공간이 괜히 더 조용히 느껴졌다.

페이트씨 신전 안에 들어갔더니, 나는 커녕 메기드씨라도 여유롭게 들어갈 수 있을 만한 넓은 복도가 이어져 있었다. 정말 정점의 신이 사는 곳이라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뭐, 마그나웰씨는 절대로 무리겠지만... 그건 마그나웰씨의 사이즈가 이상할 뿐이고, 애초에 그 분이 들어갈 수 잇는 집이라니 그건 이미 집이 아니라 별개의 거대한 무언가다.

길고 조용한 복도를 걸어가, 거대한 문 앞에 섰다.
문이 너무 커서 전혀 열릴 것 같지가 않은데... 크로노아씨는 별로 신경 쓰지도 않고 문을 노크했다.

"운명신, 있는가?"
"...으아? 시공신? 뭐야, 정말..."

크르노아씨가 문 너머 말을 걸었더니, 졸린 듯한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문이 천천히 열리고 페이트씨가 모습을 나타냈다.
보라색 머리가 산발로 여기저기 퍼져 있고, 입고 있는 법의도 구깃구깃... 문 안에서 보이는 운동장 급으로 넓은 방 안은 마치 볼풀처럼 작은 쿠션이 대령으로 쌓여 있어, 어디서든 퍼져 누울 수 잇는 상태다.

...뭐라고 해야 될까, 더 없을 정도로 전방위 틈도 없이 나태한 느낌이 가득하다. 늘어져 있는 게 좀 과한 거 아닐까요...
지금까지 인계에서 만났을 때부터 나태한 분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무섭게도, 그래도 인계에 왔을 때는 나름 외출용으로 가꾼 것 같다.
ㅁ, 뭐, 좀... 페이트씨답다고 할 수 있는 광경에, 내가 멍하니 있었더니... 페이트씨는 반쯤 열린 눈을 비비고 졸립다는 듯 말했다.

"...나는, 지금 느긋하게 지내느라 바쁜...데?"
"...저기"

하지만 그 반쯤 뜨고 있던 눈은 나를 보자마자 크게 떠지고, 페이트씨는 경악한 표정으로 굳었다.
그리고 조금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본 후, 뻘뻘 대량의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저기...혹시...설마하니...카이짱?"
"아, 네. 어, 오랜만이에요"
"...미안, 잠깐 기다려봐"
"네?"

말하자마자 페이트씨는 기다리라고 하고 문을 닫았다.
어? 기다리라니, 대체 얼마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은 고작 몇초만에 다시 열리고 페이트씨가 나타났다.

"안녕, 어서 와 카이짱! 내 신전에!"
"어!? 에, 에에에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페이트씨는 아까랑 완전 딴판이었다.
찰랑찰랑 빛나는 것 같은, 광택마저 느껴지는 아름다운 머리카락, 주름 하나 없는 순백의 법의... 방금 봤을 때는 발 디딜 틈도 없었던 엄청 넓은 방도 먼지 하나 없고, 바닥이나 벽은 거울처럼 깨끗하게 닦여 있다.

"자자, 들어와 들어와, 차도 내 줄게"
"...저기, 뭔가, 아까까지랑 저기... 너무 다르지 않아요?"
"아하하, 무슨 소리야 카이짱. 나는 '깨끗한 걸 좋아'하니까 원래 이래. 아까는 막 자다 깨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버렸네"

자다 깨서라니... 아니, 문제는 거기가 아니라!? 방! 방 말이야!! 좀 어질러져 있다거나 그런 레벨이 아니었잖아 아까 거!? 쿠션 바다였지!? 어? 이거 5초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너, 그렇게 움직일 수 있으면 평소에도 해라..."
"정말, 시공신도 장난꾸러기라니까~ 나는 항상 진지하고 건강한 페이트짱이야!"
"...하나 묻지. 왜 그렇게 전력을 다 한 거냐?"

응, 페이트씨가 평소에도 이런 느낌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아니 진짜로, 누구야 이거 라는 느낌으로 다른 사람이 아닌가 의심할 레벨이다.
확실히 진심이라는 느낌이 든다. 뭐지? 이 뭔지 모르겠지만 안 좋은 느낌...

그리고 그 불안은 적중한 듯, 페이트씨는 크로노아씨의 말을 듣고 외치듯 선언했다.

"그런 거, 카이짱을 꼬셔서 반하게 만들라고 하는 게 당연하지!!"
"...어~이... 페이트씨~"
"이야~ 몇번이나 찾아갔는데 전혀 반응이 안 좋았으니까, 카이짱 혹시 남자 좋아하나 싶었는데..."
"야, 이 잉여신아"

말을 해도 뭔 이런 소리를 해 이분은!! 누가 남자를 좋아하냐! 누가!!

하지만 역시 페이트씨, 내 영혼의 외침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샤르땅한테 들었는데, 명왕에 사왕... 그리고 뭔가 엘프랑도 연인 사이가 됐다고!! 그럼, 찬스잖아!! 될 것 같잖아!!"
"...뭐가..."
"명왕이 연애 대상이 된다는 건, 내 키로도 범위에 포함된다는 거지!! 그럼, 어택할 수밖에 없잖아! 노려라, 꿈의 빈대 생활!! 나는 니트 신이 된다!!"
"..."
"..."

아, 역시 이 분은 페이트씨다... 니트 신이라고 말하는 시점에서 구원의 여지가 없는 노답이라는 게 전해진다.
크로노아씨도 완전히 어이가 없어져서 눈썹 사이에 손가락을 대고 입을 씰룩거리고 있다.

"그러니까, 카이짱! 일단 '키스'하자!!"
"...아니, 그런 술집에서 일단 생맥주, 같은 느낌으로 말을 하면... 당연히 안 되죠"
"에에~ 괜찮잖아, 잠깐 입술이랑 입술을 붙일 뿐이야. 지금이라면 옵션으로 가슴도 만지게 해 줄게!!"
"..."

슬금슬금 이쪽으로 다가오는 페이트씨를 보고, 왠지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뒤로 물러섰다.
유감스럽게도 크로노아씨는 아직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페이트씨는 그대로 충혈된 눈으로 입가에서 살짝 침을 흘리며 다가왔다.

"괜찮아, 괜찮아... 가벼운 인사 같은 거니까... 쪼옥 하고..."
"잠깐만여 페이트씨!"

작은 몸으로 굶주린 육식 동물처럼 다가오는 페이트씨를 보고 완전히 깼는데, 갑자기 아리스가 어딘가에서 급하게 나타났다.

"어? 어라? 샤르땅? 왜 그래?"
"...지금 당장 물러나세여!! 주, 죽어여!?"
"어? 대체 무슨――헉!?"

초조해하는 아리스의 말에 페이트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방 전체가 '검은 안개'로 감싸였다.
그게 뭔지는 페이트씨도 바로 이해했는지 새파래진 얼굴로 폭포처럼 땀을 흘리기 시작하고, 그 등을 공중에 떠오른 금색 눈동자가 노려봤다.

"...대... 대단해 이거...나...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어... 이렇게까지 죽음을 리얼하게 느낀 건... 저, 정말~ 그, 그냥 스킨십...이야 그치?"
"페이트씨! 사과해여!! 빨리!!"
"미, 미안ㅎ――"

그리고 페이트씨는, 사과의 ㅁ라을 다 하지 못하고 검은 안개에 삼켜져, 직후에 공중을 찢는 듯한 비명이 들렸다.

"으야아아아아아?! 그만, 그만해애애애애?! 찢어져!? 진짜 찢어져어어어어!?"
"...느, 늦었나여..."
"으아아아아아?! 터져, 터져어어어어!?"
"...안녕히 가세여, 내 소울 프렌드... 당신의 용감함은 잊지 않을게여"
"잠, 아직 안 죽었――갸아아아아아!? 그거, 진짜 안 돼애애애애애애!? 어, 어라? 상처 나았...아아아아!? 하, 한번 더어어어어?! 그만, 그만해애애애애!?"

검은 안개에 삼켜진 방 안에서, 그대로 잠시동안 페이트씨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어머니, 아버지――신계 상층에 도착해서, 일단 페이트씨 신전을 방문했어. 뭐, 뭐라고 하면 좋을까, 알고는 있었지만――페이트씨는 여전했어.



남의 걸 건드리면 뒤지는 겁니다

NTR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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