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는 평화 311화
용자 소환에 말려들었는데, 이세계는 평화로웠습니다
311화 : 『WHITE JOKER』
나와 노인씨를 바라보면서도, 피어 선생님의 표정에 초조함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여유조차 느껴지는 모습에서는, 피어 선생님의 '내 대답은 변하지 않는다' 라는 의사 같은 게 느껴졌다.
그런 피어 선생님은, 나와 노인씨를 번갈아본 후에 온화하게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운 모습이네 히카리. 응, 역시 히카리는 머리가 짧은 게 더 잘 어울려"
"고마워요. 그립다는 의미로는, 저도 동감이에요... 이렇게 당신과 맞서고 있으면 전에 봤을 때가 떠올라요"
"응, 나도 그래... 어떡할래? 이번에도, 전처럼 싸울래?"
"아니요, 유감스럽게도 지금 저는 '용자'로서 당신을 쓰러뜨리러 온 게 아닙니다. '친구'로서, 당신을 설득하러 왔어요"
그건 겉보기에는 온화한 대화로 들렸다. 하지만, 노인씨도 피어씨도 서로 진지한 눈으로 바라본 채로, 결코 시선을 떼지 않는다.
전에 용자와 마왕이 대치했던 때와는 다른 의미이며 다른 형식일지도 모르지만... 둘의 싸움은 이미 시작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광경을 나는 끼어들지 않고 보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내가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지금 말을 하는 것은 당사자들, 여기에 외부인인 내가 들어가봤자 대화를 어지럽힐 뿐... 노인씨가 피어 선생님을 설득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결과일 거다.
다만, 그렇게 되지 않은 경우에는... 당사자들이니까, 상대의 고통을 알고 있으니까, 노인씨가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다면... 내가 대화에 참가할 생각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둘의 대화를 놓치지 않도록 계속 바라본다.
"...기뻐. 나한테 있어서도, 히카리는 아주 중요한 친구니까... 하지만, 대체 뭘 설득하는 걸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크롬님과 만나 주세요"
"그럼, 나도 간결하게 대답할게. 그럴 수 없어"
"하지만, 당신 자신은 크롬님과 만나기를 바라고 있어요. 아닌가요?"
"맞아... 그걸 숨길 생각은 없어. 나는 크롬님을 만나고 싶어... 한번 더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만나고 싶지 않다'가 아니라 '만날 수 없다'... 피어 선생님이 그렇게 대답할 것은 노인씨도 알고 있었기에, 특별히 동요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피어, 당신은 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고통받으며 살 건가요? 이제, 됐잖아요... 당신이 이 1000년동안 얼마나 힘들어하고, 얼마나 속죄를 해 왔는지... 저는 절실히 이해하고 있어요"
"..."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위험한 마물이 발생하면 짬을 내서 남 몰래 구제하고, 의사로서 번 돈 대부분을 기부했죠. 불치병이라고 불린 병도 적극적으로 관여해서 몇 개나 새로운 치료법을 만들어냈고, 그걸 아는 의사들을 통해 아낌 없이 알렸어요. 칭찬받는 걸 좋게 생각하지 않고 계속 자신을 탓하기만 하고... 그런 걸, 언제까지 계속할 건가요?"
"...끝은 없어. 내가 하는 속죄는, 그냥 자기 만족이야... 끝날 일은 영원히 없어"
"...이제, 당신은 용서받아도 될 거에요. 당신이 대체 뭘 했죠? 당신은 마왕이라고 불렸을 때도, 싸우는 힘 없는 자는 상처 입히지 않고, 싸운 자들조차 누구도 죽이지 않았잖아요"
"..."
그건 분명, 노인씨가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겠지.
피어 선생님은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피어 선생님이 부하로 들인 마족들은 그렇지 않았다.
아리스가 말했듯이 피어 성생님도 제어하지 못한 책임은 있을 거다. 하지만, 노인씨의 주장대로... 확실히, 그겨는 피도 눈물도 없는 마왕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피어 선생님은... 분명 자신을 최악의 존재라고 말할 거다.
"...그런데, 왜 당신은 용서받지 못하는 거에요? 왜, 행복하게 웃는 것조차..."
"...당연하지. 다른 누가 용서해도... '내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 나는 용서받으면 안 돼. 어리석은 죄를 범하고, 소중한 사람을 상처 입힌 나에게... '행복해질 자격은 없어'"
마음 아프게 말하는 노인씨의 말에게, 피어 선생님은 철벽을 치고 대답하는데... 뭘까? 좀 열 받는다.
"왜, 그런 말을 해요... 당신도 소원을 빌 권리는 있을 거에요! 크롬님을 만나고 싶다... 그럼, 만나면 되잖아요!!"
"못 만난다고 했잖아! 이제, 나는 크롬님에게 얼굴을 보일 수 없어... 그럴 자격은 나한테 없다고!"
"이런 답답한 ―― "웃기지 마!" ―― 엉? 카, 카이토씨?"
"...미야마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대화에 끼어들 생각은 없었다. 당사자들이 대화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 방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쿠로의 이름이 나오자, 자신의 마음에 있는 '분노'라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놀라서 이쪽을 보는 피어 선생님을 노려봤다.
"...뭐에요 그게... 왜, 과거에 죄를 지은 사람은 행복하면 안 된다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거에요!"
"어? 무, 무슨..."
"프이 선생님이 과거의 죄를 씻는 거에 대해서 저는 아무 말도 할 생각 없어요. 피어 선생님이, 만족할 때까지 하면 되죠,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하면 돼요. 그거에 대해서 당사자가 아닌 저는 아무 말도 할 권리가 없어요... 하지만! '지금의 당신'이 행복해지는 데 자격 같은 게 필요할 리가 없잖아요!"
"미, 미야마군... 그러니까, 나는..."
"...그냥 '쿠로랑 만나는 게 무서울' 뿐이잖아..."
"뭐!?"
흥분해서 존댓말을 잊은 내 말을 듣고, 피어 선생님은 오늘 처음으로 명확하게 동요한 표정을 지었다.
"쿠로랑 다시 만나서, 그걸로 혹시, 쿠로가 나를 용서해주지 않으면 어쩌지... 당신은! 그게 무서워서, 쿠로를 볼 면목이 없다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을 뿐이야!"
"...아, 아니야, 나는..."
"...정말 쿠로가 소중하고, 민폐를 끼쳤다고 생각하면... 왜 직접 만나서 사과하려고 하지 않는데?"
"!?"
여기까지 내가 들은 이야기로는, 피어 선생님은 쿠로를 만나지 않은 채로 쿠로의 곁에서 떠났닥 ㅗ했다.
쿠로에게 용서받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그렇게 말했다고 하는데... 나느 진짜 이유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건, 쿠로가 나에게 중얼거린... 만나고 싶지만 피어 선생님이 만나고 싶어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쓸쓸하게 한 말... 분명, 피어 선생님도 마찬가지일 거다.
"어쩌면, 쿠로에게 미움을 받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머리 속에 있어서, 결국 지금까지 만나지 못하고 있었던 거 아니에요?"
"그...건..."
"당신은... 좋아한다고, 어머니라고 말했던 쿠로를... 자기 자신이 도망치기 위한 변명으로 쓰고 있는 거 아니에요?"
"..."
아무래도 내 생각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피어 선생님은 동요한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아마, 정답이다... 이 사람은 쿠로를 만나고 싶다. 제대로 쿠로에게 사과하고 용서받고 싶다고 생각하는 반면, 혹시 쿠로가 거절하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이 떠올라서 발을 못 내딛고 있는 거다.
적어도 어느 정도 자각이 없다면, 이렇게까지 동요하지는 않을 거다.
"...역시, 그런 거죠? 당신은 쿠로를 못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나는 게 무서운 거에요. 하지만, 동시에 쿠로를 만나서 용서받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아, 아니야... 아니야... 나는..."
부정하듯 고개를 젓는 피어 선생님인데, 그 목소리는 매우 작다.
하지만, 다행이다... 피어 선생님은 행복해지고 싶지 않다, 구원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예전 나와 마찬가지로 누가 구해줬으면 한다, 손을 뻗어줬으면 한다고 바라면서도, 그걸 스스로 거절했을 뿐이다.
"...피어 선생님. 쿠로를 만나 주세요"
"시, 러... 싫어! 나는, 크롬님을... 만날 수 없어!"
"...피어"
"싫어! 만나기 싫어... 크롬님이 나를 거부하면... 나는 이제..."
아까까지 있었던 피어 선생님의 여유는 완전히 무너져, 나와 노인씨의 부름에 마치 투정 부리는 애처럼 고개를 젓는다.
이제, 여기까지 오면 응석 같은 거다. 만나고 싶지만 만나고 싶지 않다니...
"...유감이지만, 피어 선생님. 저는 이제 결정했어요. 수단은 가리지 않을 거에요. 당신이 뭐라고 하든 알 바 아니에요. 싫어해도 상관 없어요. 경멸해도 상관 없어요... '억지로'라도, 당신을 쿠로 앞에 데려갈 거에요"
"아, 안 가! 나는..."
만나기 싫다고 외치는 피어 성생님이지만, 이제 나한테는 상관 없다.
쿠로는 나한테 말했다. '피어랑 만나고 싶어'라고... 그럼, 나는 쿠로의 소원을 이룬다. 아니, 어쩌면 그것도 그냥 변명일지도 모르겠자.
"하, 하지만, 어떡할 거에요 카이토씨? 저렇게 되면 간단하게 움직여주지는 않을 거에요. 게다가 억지로라고 해도... 피어는 상당히 강한데요? 진심으로 저항하면..."
"노인씨, 저는 지금 말했어요... 수단은 가리지 않는다고... '비장의 수'를 쓸게요"
"...그 '날개'는... 비장의 수라니 대체..."
노인씨의 말에 조용히 대답하며, 나는 주머니에서 순백의 날개 한 장을 꺼냈다.
"...저는, 피어 선생님과 쿠로를 다시 만나게 하고 싶어요. 쿠로의 소원을... 아니, 저 자신이 납득을 못 하겠어요. 맞아요, 이건 제 아집... 그러니까, 그걸 이루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듯 중얼거리며, 나는 손에 든 날개를 던졌다.
하늘하늘 중력에 따라 낙하하는 날개를 바라보며, 키가 될 말을 입에 담았다.
"힘을 빌려주세요 '에덴씨'!"
순간, 교회 내부에 은백의 바람이 휘몰아쳐, 거대한 구체가 되어 열 쌍 20개의 날개가 나타났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날개가 펼쳐져, 압도적인 마력이 뿜어지며, 이계의 신이 강림했다.
"...모두, 승낙"
비밀병기는 에덴 마망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