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는 평화 319화
용자 소환에 말려들었는데, 이세계는 평화로웠습니다
319화 : 매번 정말 죄송합니다
피어 선생님 일이 일단락된 후, 나는 피어 선생님과 함께 리리아씨 저택으로 돌아왔다.
피어 선생님이 동행하는 건, 물론 리리아씨에게 사정 설명을 하기 위해... 말려들게 했으니까 자기 입으로 제대로 설명을 하고 싶다고 해서, 내 전이 마법구로 같이 돌아왔다.
참고로 노인씨도 동행하겠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노인씨는 리리아씨와의 싸움으로 상당히 피로가 쌓인 것 같아서 피어 선생님이 의사로서 말렸다.
특히 리리아씨에게 맞은 곳은 뼈가 부러졌다고 한다. 골절 자체는 피어 선생님이 치유 마법으로 고칠 수 있지만, 피로도 크기 때문에 오늘 하루는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노인씨는 '별로 뼈 하나 둘 정도 기합만 있으면 어떻게든 돼요' 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며 동행하려고 했지만, 피어 선생님이 거의 억지로 가게 만들었다.
아니 노인씨는 가슴쪽 뼈... 늑골이 부러진 상태로, 멀쩡히 밥을 먹기까지 했으니... 새삼 저 분도 충분히 초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노인씨 말로는 뼈가 몇 대 부러진 정도로는 하루 쉬면 완치된다고 한다. 그건 마족의 몸이라서인지, 노인씨가 괴물인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큰 일은 아니라 안심이다.
그리고 지금, 리리아씨, 루나마리아씨, 지크씨가 기다리는 집무실에 도착한 나와 피어 선생님은 노크를 하고 안에 들어갔다.
뭐, 피어 선생님의 덜렁이 기질이 살짝 발휘돼서... 미닫이문을 밀고 있었기에 노크한 후에 들어가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는데...
"다녀오셨어요, 카이토씨. 그리고 어서오세요, 피어 선생님"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이야 리리아짱. 그리고 지크짱. 루짱은 전에 만났지"
"어라? 피어 선생님, 다들 아는 사이에요?"
"아, 응. 루짱 소개로 몇 번 만난 적이 있어"
그러고보니 피어 선생님은 노아씨의 주치의니까, 루나마리아씨 경유로 리리아씨랑 지크씨와 알게 되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셋 다, 이번에는 나 때문에 민폐를 끼쳐서 정말 미안해"
"아, 아니요... 신경 쓰지 마세요. 다만, 그, 부끄럽지만 저희는 어떻게 된 건지 이해를 못 하고 있으니... 가능하시다면 설명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응. 물론 제대로 설명할 거야... 음, 어디부터 얘기를 할까..."
원래부터 아는 사이이기도 해서, 꽤 무난하게 사정 설명이 시작됐다. 피어 선생님은 하나하나 떠올리듯 말을 시작해, 이번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피어 선생님의 설명이 전부 끝나자, 집무실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마왕이 사실은 살아있었고, 그게 피어 선생님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 그 말이 나온 공간 속에서, 우선 처음 움직인 것은 루나마리아였다.
루나마리아씨는 크게 눈을 뜨고 멍하니 있다가, 무너지듯 무릎을 꿇었다.
"...아, 아니... 피어 '언니'가... 마왕?"
"응. 숨겨서 미안해. 루짱"
"아, 아, 아니요!? 아... 그, 그게, 아니에요!"
루나마리아씨는 놀란 것도 놀랐는데, 왠지 얼굴을 새파랗게 하고 '아니'라고 외쳤다.
"저, 저는,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마왕의 이미지로 말을 한 거고... 피, 피어 언니를 바보 취급 한 게 아니에요!!"
...아, 그렇구나. 그러고보니 루나마리아씨, 마왕을 엄청 깠던 기억이 난다.
그게 사실 아는 사이었고,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친한 사람이어서, 엄청 당황해 변명을 하는 거다.
"아니야. 신경 쓰지 마. 사실 나는 루짱이 말하는 대로 엄청 어리석으니까"
"아, 아니에요! 피어 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아, 알았으면 절대 안 말했어요!?"
"어? 아, 으, 응. 고마워? 어, 숨겼던 거, 화 안 내니?"
"안 내요! 피어 언니한테, 그런... 오히려, 계속 못 알아채고 심한 말을... 죄, 죄송해요"
아무래도 루나마리아씨는 정말 피어 선생님을 좋아했나보다. 마왕이라는 정체를 안 것 보다, 모르는 채로 피어 선생님을 욕했던 것에 충격을 받은 것 같다.
평소라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순순히 사과하는 루나마리아씨를, 피어 선생님은 살짝 당황하며 달랬다.
그 광경을 보면서, 지크씨도 천천히 놀란 감정을 정리하듯 입을 열었다.
"...피어 선생님이 마왕이었다니... 놀랐어요. 하지만, 저도 루나랑 마찬가지로 화가 나는 감정은 없네요. 오히려, 저희를 위해 말하기 어려운 사정을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크짱"
"맞아요! 과거가 어쨌든, 피어 언니는 피어 언니니까요!"
"...루짱"
루나마리아씨와 지크씨, 둘다 지금 피어 선생님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과거를 알았다고 해도 경멸하거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걸 들은 피어 선생님은 정말 기쁜 듯 미소를 짓고, 가까이에 있던 루나마리아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하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 리리아씨만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똑바로 피어 선생님을 보고 있었다.
"...리리아짱, 미안해. 놀라게 해서... 그리고, 민폐를 끼쳐서"
"..."
"아, 아가씨! 피어 언니를 욕하지 말아주세요. 피어 언니도 많은 고통을 받아왔어요!"
"..."
"...아가씨?"
리리아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똑바로 피어 선생님을 바라본 채로 '미동도 하지 않는다'... 어라? 뭔가 상태가 이상한데?
그런 의문이 머리에 떠오르자, 루나마리아씨도 같은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리리아씨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리리아씨의 얼굴 앞에서 몇 번이나 손을 움직이는데... 리리아씨는 반응이 없다.
"...'기절'...했네요"
"...리리...눈을 뜬 채로 기절하다니, 또 대단한 기술을..."
눈을 뜬 채로 기절하다니!? 새, 새로운 패턴이다... 아니, 기절 방법에 그런 다양성이 필요한 건 아닌데...
아무래도 피어 씨의 이야기는 리리아씨의 허용 범위를 가볍게 넘어버려서, 듣던 도중에 기절한 것 같다.
"크, 큰일이야! 바로 각성 마법을..."
"어? 아, 피어 언니!?"
그리고 그런 리리아씨의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피어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기절한 리리아씨를 알아채고 작은 마법진을 띄워 손을 댔다.
그러자 피어 선생님의 손에서 빛이 뿜어져, 경직됐던 리리아씨의 눈이 움직였다.
"어, 어라? 저는..."
"리리아짱!? 괜찮아? 갑자기 기절했어... 혹시, 피로가 샇인 건 아니야? 어디 아프거나 하니?"
"아, 아니요, 괜찮아요... 하하하, 죄송해요.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아서... 피어 선생님이 마왕이라니, 이상한 꿈이네요..."
"으, 응. 내가 마왕인데?"
"...네?"
"아, 아니, 그러니까, 내가 옛날에 마왕이라고 불린 마족이고..."
"아, 아하하, 그, 그렇구나, 꾸, 꿈이 아니었군요.... ㄴ, 네, 마왕이군요. 마왕, 알아요... 피어 선생님이... 마왕이고, 마왕이 피어 선생님이고... 마왕이 마왕이고... 윽"
"리리아짱!? 정신 차려!?"
일어난 후에 바로 두 번째 기절... 리리아씨, 뭔가, 그... 죄송해요.
눈을 뒤집고 기절한 리리아씨를, 피어 선생님이 당황해하며 지탱했다. 응, 이거, 그거다... 몇 번 더, 일어나고 기절하고를 반복할 것 같다.
"...차라도 끓여 올까요"
"...저는 벨짱과 린짱에게 밥을 갖다주고 올게요"
어머니, 아버지――피어 선생님이 리리아씨 일행에게 사정 설명을 했는데, 역시라고 해야 될지, 리리아씨는 또 기절했어. 응, 그, 뭐라고 해야 될까――매번 정말 죄송합니다
이 사람... 선채로 기절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