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는 평화 338화
용자 소환에 말려들었는데, 이세계는 평화로웠습니다
338화 : 파란이 한 번 더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즐겁고 온화한 저녁 식사를 끝내고, 아인씨가 타 준 홍차를 마시며 잡담을 하고, 꽤 괜찮은 시간이 됐을 때 쿠로가 어떤 제안을 해 왔다.
"슬슬 시간도 됐는데, '다 같이' 목욕하자!"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도망쳤다. 그 때의 내 움직임은 지금까지 없었을 정도로 깔끔하고 빨랐던 것 같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의자에서 일어나, 쿠로 일행을 돌아보지도 않고 전력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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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초 후... 나는 탈의실에 있었다. 안 된다. 주변이 너무 치트다. 쿠로랑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 내 전력 질주는 달팽이 레벨이겠지. 내가 알아채는 것보다 빨리 탈의실에 연행되었다.
"...카이토... 그렇게 목욕을 하고 싶었어?"
아니요, 그게 아닙니다 아이시스씨... 저는 지금 목욕탕으로 뛴게 아니라, 목욕탕에서 벗어나려고 뛴 거에요. 제가 여기 있는 건 저 괴물 메이드 때문이라구요.
목조로 완전 일본식인 탈의실은 정말 온천 같은 분위기였는데, 나는 그걸 느긋하게 바라볼 여유가 없다.
"저, 저기, 쿠로?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이거 남녀 따로 아니..."
"어? 같이 가자. 등 밀어주기 하자!"
"...나도... 카이토 등... 밀어줄래"
예상대로 혼욕이다... 누가 도와줘!? 아니, 이건 진짜 위험하다고! 쿠로에 아이이스씨에 아인씨에 아리스... 미녀 넷과 혼욕이라니, 의식을 유지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뭔가, 뭔가? 잘 도망칠 방법은... 하, 하지만, 싫다고 하면 아이시스씨나 쿠로가 슬퍼할 거고... 으으윽, 어떡하지...
"잠깐만여! 여자의 몸은 그렇게 간단히 보여주는 게 아니에여!"
윽, 뭔가 이상한 데서 도움이... 아, 아니, 잘 생각해보면 아리스는 엄청나게 부끄러움을 타는 성격이었다. 이 멤버 중에서는 귀중하다.
좋아좋아, 이걸로 3대 2, 아직 숫자로는 불리하지만, 충분히 대응할 수 있...
"그것보다, 저는 '전의 일'이 트라우마에여! 카이토씨랑 목욕이라니, 저는, 저는... 이제, '카이토씨한테 시집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몸'이 되어 버린다구여!!"
"오해를 살 만한 발언을 하지 마!?"
아리스의 트라우마란, 전에 있었던 목욕탕에서의 사건 말인가... 말을! 무조건 다른 의미로 들린다고 그거!?
"...놀랍네요. 설마, 샤르티아가 크롬님을 제치고 카이토님과 그런..."
"아니, 아인씨? 오해라구요... 오해..."
"지금 되돌아봐도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아여. '제 가장 소중한 곳'까지 '확실히 보였'으니..."
"잠깐, 너 입 다물어!!"
편은 커녕 최악의 적이었다 이 자식!? 부끄러워서 당황한 건 알겠지만, 이 이상 쓸 데 없는 소리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런 고로, 저는 '수영복을 입을' 것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왜?"
"왜라니, 아이시스씨... 그러니까, 그렇지 않으면 알몸이라구여"
"...카이토 이외에는 보여주고 싶지 않지만... 카이토는... 카이토가 보고 싶다면... 나는... 괜찮은데?"
"상상 이상으로 적극적!?"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아이시스씨에게, 아리스 뿐만 아니라 나도 멍 때리고 말았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건 전에 아이시스씨의 온천에 들어갔을 때 봤던, 눈처럼 하얀 피부...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아. 안 돼. 냉정을... 냉정을 유지해라!
아이시스씨는 절대 그 이상 뭔가를 알고 있는 게 아니다. 그냥 단순히 내가 원하다면 뭐든 해주겠다, 같은 순수한 애정에서 나오는 말... 그래서 더욱 내가 엄청 힘들다.
"...나도... 뭐, 뭐어, 그, 부끄럽지만... 카이토군이 보고 싶다면..."
"쿠로씨까지!?"
조금 소극적으로 말하는 쿠로의 말은, 평소와의 갭이 커서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목욕을 하기 전부터 내 정신을 벅벅 긁어낸다.
전언철회. 아리스, 입을 안 다물어도 되니까, 좀만 힘내라... 어떻게든 이 이상한 흐름을...
"아, 안돼여! 카이토씨도 남자... '양의 탈을 쓴 늑대를 가장한 양'이에여!!"
"...그거 그냥 양 아닌가요?"
하지만 아리스도 상당히 당황한 듯,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아인씨가 날카롭게 태클을 걸었다.
질질 끌리는 분위기가 되었는데, 거기서 쿠로가 아리스에게 슬쩍 다가가 뭔가 귓속말을 했다.
"샤르티아..."
"...네? 아, 아아, 그런 방법이... 그렇구나..."
"어, 저기, 둘이 뭘..."
"모처럼이니, 카이토씨. 다 같이 맨몸으로 대화를 해 보져!"
"진짜 무슨 일이 있었냐!?"
말도 안 돼!? 저 아리스가 이렇게 간단히 의견을 바꾸다니... 쿠로는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지? 절대 말도 안 되는 거겠지만...
어? 이제 이거, 결정이야? 다 같이 욕실에 들어가는 거... 결정인 거야?
유일한 아군이었던 아리스까지 배신해, 드디어 도망갈 곳이 없어진 나는 무의식중에 한 걸음 뒤로...
"아이시스씨!? 옷을 벗지 마세요! 최소한 탈의실은 따로!!"
"...어? ...응... 알았어"
위, 위험하다. 완전히 기습을 당할 뻔했다... 응. 나는 아무것도 못 봤다. 가슴께에 살짝 옅은 파란색 천이 보였지만, 그런 거 없다.
괜찮아, 괜찮다... 침착해라, 마음을 비우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인씨가 쿠로에게 인사를 하고 입을 열었다.
"...그럼, 저는 여기서 기다릴테니, 무슨 일이 있으시면..."
"무슨 소리야 아인? 아인도 같이 들어가야지"
"...아, 아니요, 하지만, 메이드인 제가, 주인인 크롬님과 같이 입욕을 할 수는...
어라? 뭔가, 기분 탓인가? 아인씨가 드물게 똑부러지지 않은 듯한, 뭔가 당황한 듯한.
"아, 아인씨? 싫으시면, 무리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 아닙니다. 카이토님과 입욕하는 게 싫은 게 아니라... 이건 그, 제 문제라서..."
"응?"
혹시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되고, 쿠로는 내가 설득한다는 의미를 담아 물어봤는데, 아인씨의 대답은 역시 똑부러지지 못하다.
결국 아인씨는 쿠로에게 강제로, 쿠로, 아이시스씨, 아리스 셋과 함께 탈의실로 이동했다.
어머니, 아버지 ―― 역시 나는 목욕이라는 것에 저주를 받은 것 같아, 갑자기 매우 곤란한 시련이 덮쳐왔어. 그리고 신경 쓰이는 건, 평소와 다른 아인씨의 상태... 이건 ―― 파란이 한 번 더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