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주의자

현실주의자 2화

레이빈 2019. 2. 14.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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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꾸는 남자는 현실주의자


2화 : 상태 이상




아무 일도 없이 1교시 수업이 끝났다. 국어라는 건 현대문이라면 알겠다만, 고전문학이나 한문을 배우는 의미를 모르겠다. 이미 일상에서 잊혀진 말을 쓸 일은 두 번 다시 없을텐데, 왜 공부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한문 일화에서 교훈을 가르치고 싶다면 처음부터 현대문으로 번역한 걸로 가르쳤으면 하는 건 나 뿐일까?


"하아..."


아침은 한 숨 돌릴 시간도 없었다. 볼일을 보러 복도로 나가려고 하자, 먼저 아이카가 앞을 걸어갔다. 놀란 얼굴을 하는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좀! 따라오지 마!"


"아, 아니, 화장실 갈 건데"


"어...어?"


아이카는 그 자리에서 굳었다. 어색한 분위기다. 그녀는 자신이 착각을 한 거라는 걸 깨달았는지 얼굴이 빨개져, 분한 듯 나를 노려보고 소리쳤다.


"그럼 먼저 말을 해!"


"어, 어..."


남자한테 '화장실 간다'라는 소리를 들어도 반응하기 곤란하지 않을까? 그 황당한 분위기를 상상하며, 아이카의 옆을 지나가 화장실을 갔다.


"───야야, 너네 무슨 일 있었냐?"


"너네라니... 나랑 아이카?"


"그래, 싸웠나 싶어서"


입구 근처, 나는 몇 친구들에게서 남자 화장실 안으로 질질 끌려가듯 연행됐다. 히죽히죽 재밌는 걸 보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싸우다니, 평소대로잖아?"


"응, 어... 그러고보니 그러네"


내 반응에 납득하는 친구. 하지만 그걸로 완전히 해결이 안 된 것 같은 다른 하나가 질문하듯 나에게 들이댔다. 아, 콧김 개같네.


"아니, 평소라면 나츠카와양이 화를 낼 뿐이잖아? 사죠는 신경도 안 쓰고 나츠카와양한테 달라붙잖아"


"아, 그러고보니 그랬지"


"그랬지라니..."


그러고보니 그랬다. 나는 아이카가 싫어한느 반응을 보여도 그걸로 포기하지 않았다. 화를 낸다고 해도, 자신에게 올곧게 감정을 내비치는 게 기뻤다.

나는 그렇게까지 아이카를 좋아───응? 좋아?


"야, 나 아이카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냐?"


"뭐? 뭐래는거야 사죠, 푹 빠졌잖아 너"


"그치, 나도 좋아. 포교하고 싶어"


"야 이 타이밍에 자랑───포교!?"


친구가 말하는 대로, 나는 나츠카와 아이카를 좋아한다. 늠름한 행동도 강한 마음도, 가끔 보이는 남을 잘 돌보는 부분도. 그러니까 지금까지 그녀가 나를 돌아봤으면 해서 필사적으로 자기 어필을 해 왔다.


하지만, 이 감각은 뭘까. 그녀를 좋아한다는 건 틀림없는데, 지금 바로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옆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뭔가가 사라졌다.

아니 그래도, 그러면 그녀에게 반했다는 감정도 사라지는 거 아닌가? 대체 뭐지 이 감각은.


"별로 싸운 건 아닌 거 같네"


"그래. 나도 그런 것 같다"


"그래, 본인인 나도 그렇게 생각해"


"뭔 소리야 너는"


이상한 분위기로 해산했다. 쉬는 시간이 거의 끝나버렸다. 우리는 당황해 볼일을 보고 교실로 돌아왔다. 그 때 아이카에게서 이상한 걸 보는 듯한 시선을 받은 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시선 좀 더 컴온.









점심이다. 지금까지 체감은 10시간. 사실 4교시때부터 배에서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내 위장은 언제든지 소화할 준비가 돼 있다. 자 때가 왔으니 바로 일어나───일어나서?

일어나면 어쩔건데? 도시락은 바로 꺼낼 수 있도록 감싼 천은 책상 옆에 걸어놨다. 별로 일어날 필요는 없다. 평소에는 점심때 어떡했더라?


'───자 먹자 아이카!'


아.


나도 모르게 왼쪽을 봤다. 우연히 딱 아이카와 눈이 마주쳤다. 잔뜩 얼굴을 굳히고 있다. 평소처럼 같이 먹자고 말을 걸려고 했는데, 어째선지 말을 못 했다. 심지어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덮쳐와 머리가 어지럽다.


"뭐, 뭔데... 할 말 있으면 해"


"아, 아니... 그게..."


어, 왜 이렇게 어색하지? 평소라면 바로 책상을 붙여 히죽히죽 웃으며 아이카의 얼굴을 보며 그 풍경을 반찬으로 밥을 먹지 않았나? 우와 개 재수없잖아 부끄럽다든가 그런 수준을 넘었는데?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뭐어?"


지금은 뭔가가 이상하다. 애초에 비치는 풍경의 배색조차 평소와 다른 것 같다. 솔직히 패닉 상태다. 아이카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이런 거 처음이다.

어쨌든 지금은 여기서 벗어나야겠다. 제 3자가 보기에 내 상태가 이상하게 보일 거다, 별로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일단 어딘가, 아무도 없는 곳으로.


"어...!? 자, 잠깐!?"


도시락은 집었다. 마실 건 가면서 자판기에서 사면 된다. 아이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지금은 신경을 못 쓰겠다. 맨날 달라붙는 건 난데 말이야. 진짜 뭔 소리야 바보 아니냐 나...


머리 속에 빙글빙글 돈다. 시야는 깨끗하다. 혼란스러워하며 녹차를 사려고 했는데 손에는 콜라가 들려 있다. 아 모르겠다 아무거나 먹자. 적당히 터벅터벅 걸어다녔더니 안뜰의 지붕 달린 통로 도중에 있는 벤치를 발견했다. 아무도 안 쓰는 것 같으니 저기면 되겠다.


"..."


털썩 앉아 30초 정도. 정신을 차렸더니 나는 무릎 위에 도시락을 열어놨다. 식욕은 있다. 누가 봐도 사온 것 같은 형태의 계란말이를 젓가락으로 찔러 입에 넣었다.


"...맛있다"


단 맛이 스며드는 극상의 일품. 아마 5개 210엔짜리일 거다. 마음이 정화되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냥한 맛인데. 엄마의 손맛이 뭐더라?

계속 씹었더니 깨끗한 시야를 따라가듯 머리 속도 깨끗해졌다. 먼 옛날 TV의 스노 노이즈 같았던 게 깔끔해졌다. 눈에 비치는 게 그대로 머리 속에 비친다. 파문 하나도 없는 수면 안의 풍경이 보이는 것 같다. 당분이 모자랐던 건가...


"위험했다"


머리가 정상으로 돌아와 생각한다. 나는 일단 밥보다 보건실에 가야 됐던 거 아닐까 하고. 이상해진 머리가 정상적인 판단을 못 한 게틀림없다. 하지만 결국 나았으니까 됐다. 오히려 큰 일로 안 번져서 다행이라고, 후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5교시... 다음은 현대문학이다. 뇌사 시간이 드디어 찾아왔습니다. 솔까 일상적으로 적당히 책을 읽으면 굳이 수업에서 단련할 힘도 없다. 당분이 모자라다면 아무 생각 없이 멍때려 소비를 억제하자.

그런 생각을 하며 교실에 돌아와 의자를 끌었다. 소리를 알아챘는지, 왼쪽 자리에 있는 아이카가 이쪽으로 몸을 향했다. 내 가슴께에 눈을 향하고(아마 이름표를 확인), 그 후에 나랑 눈을 마주쳤다. 뭐야 그 더블 시큐리티 락 같은 인식 방법.


"혹시 걱정 끼쳤어?"


"ㅁ, 뭐!? 왜 내가 너 같은 걸 걱정해야 되는데!"


"그, 그러세요"


분노의 부정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다 이런 걸로 상처받는 내가 아니었는데... 뭔가 그냥 울고 싶어졌다. 적어도 아이카의 기분이 원래대로 돌아올 때까지는 조용히 있자. 어깨 주물러 드릴까요───침착해라, 침착해라 나 욕망에 지지 마라.


"그, 그러세요라니 너..."


"어, 뭐?"


"아무것도 아니야 바보야!"


오케이, 지금 건 좋다. 그냥 욕만 하는 거라면 포상일 뿐이다...! 하지만 아이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건 희한하다. 평소라면 확실히 목소리를 내며 거절하는데. 아니, 거절은 안 해줬으면 좋겠다만.


그 후로 한마디도 주고받는 일 없이, 줄곧 멍하니 있는 걸로 어떻게든 원래 컨디션을 되찾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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