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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는 평화

이세계는 평화 353화

레이빈 2022. 3. 7.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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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자 소환에 말려들었는데, 이세계는 평화로웠습니다

353화 : 싸워야 할지도 몰라


3개째 투기장. 그곳은 콜로세움이라기보다, 도장 같은 형태였다.

도전권 스탬프 10개라는 게 상당히 시간이 걸리는 듯, 아직 다른 도전자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마와 함께 정적이 느껴지는 투기장에 들어가자, 그 중앙에서 정좌를 하고 있는 분이 보였다.

앉아 있어서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신장은 2미터 정도. 기모노 비슷한 옷을 입은 파란 머리 여성.

 

"잘 왔다 미야마 공"

 

하나 전 투기장에 있던 콩씨와 정반대로, 차가움이 느껴지는 조용한 목소리. 

여성은 천천히 일어나, 나와 아니마를 향해 섰다.

 

"내 이름은 입실론... '절영'의 입실론이라 불린다. 잘 부탁하지"

"아, 미야마 카이토입니다. 여기는 제 대리인 아니마라고 해요"

"흠, 알았다. 이것저것 잡담을 하는 건 특기가 아니다. 바로 본제로 들어가자고. 아니마 공, 이걸 만져라"

 

입실론씨는 그렇게 말하고, 바커스씨 있던 데서 본 것과 같은 수정구를 꺼내들었다.

아니마는 내 앞으로 한 걸음 나가, 그 수정구를 만졌다.

 

"...흠, 수치는 '80만'인가... 상당하군, 자작급 레벨이라고 판단된다"

 

아, 아니마 세다!? 어, 내가 '3'이었으니까... 내 20만배 이상 강하구나 아니마... 뭐, 세상에는 수정구가 부서질 정도로 불합리하게 강한 존재도 있긴 하지만...

 

"그럼, 룰을 정하지. 그대가 나에게 한 번이라도 공격을 맞추는 데 성공하면 클리어로 하겠다. 그리고 핸디캡으로, 나는 한 팔과 한 다리를 사용하지 않고, 마력을 사용한 공격도 하지 않는다. 마력을 사용한 방어는 할 테니, 주의하도록. 또한 이동 제한도 추가하는데... 나는 원래부터 이 곳에서 움직일 생각은 없으니 문제는 없겠지.

"..."

 

입실론씨의 말을 아니마는 조용히 듣고 있다. 상당히 핸디캡이 붙었는데, 그것에 대한 불만은 없는 것 같다.

아니마는 입실론씨의 설명을 다 들은 후, 한 번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저도 바보는 아닙니다. 원래 살았던 좁은 숲이라면 몰라도, 이 세계에서 저 이상의 강자가 여기저기 존재하는 것은 알고 있어요. 그녀도 저와 비교하면 월등한 상위... 제 약함이 싫어집니다"

"비하할 필요는 없다. 그대도 세계에서 위에서 세는 게 빠를 실력자다"

 

여러가지 의미로 콩씨와 반대되는 존재다. 입실론씨는 자기보다 약한 아니마를 바보 취급하지 않고, 어딘가에서 꺼내든 언월도를 한 손에 들고 겨눴다.

 

"주인님, 다녀오겠습니다. 반드시 당신에게 승리를..."

"아니마, 힘 내고... 그래도, 무리는 하지 마..."

"예!"

 

결의를 담은 말과 함께 아니마는 입실론씨를 향해 양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내가 방해되지 않는 위치로 이동한 걸 확인한 후... 싸움이 시작됐다.

 

 

 

 

 

 

솔직히, 나는 마음 속 어딘가에서 전왕 오장을 얕봤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두 싸움이 한 세계의 정점인 에덴씨에 백작급 최강인 판도라씨가 싸웠기 때문에, 압승이라는 형태로 끝났다. 머리로는 그렇게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눈 앞의 광경에는 놀랐다.

 

"...윽... 하아... 하아..."

"..."

 

거친 숨을 쉬며 한쪽 무릎을 꿇은 아니마 앞에는, 처음 위치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입실론씨. 실력차는 내 눈으로도 확실히 알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아니마가 얼마나 공격을 걸어도 입실론씨는 한 손에 든 언월도 한 자루로 전부 처리해냈다.

 

방어 마법은 사용한다고 말했는데, 입실론씨는 지금까지 한 번도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기술도, 마력도 차이가 심한 건가, 아니마는 공격을 할 때마다 튕겨져 나와 땅에 몇 번이나 굴렀다.

자작급과 백작급... 차이는 하나일텐데, 여기까지 차이가 나는 건가...

 

"아니마! 이제, 그만..."

"괘, 괜찮아요! 아직, 저는..."

 

입실론씨는 아니마를 공격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니마는 이미 너덜너덜한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튕겨나와 땅에 쳐박혀... 그게 몇 번이나 반복되어, 지금은 입가에서 피도 흐른다.

솔직히 이제 승패는 됐고 아니마가 다치는 걸 볼 수 없었던 나는, 져도 되니까 그만하라고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아니마의 강한 목소리로 막혔다.

그런 아니마에게, 입실론씨는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이상은 의미 없겠지. 그대의 실력은 충분히 이해했다. 너무나도 젊고 기량은 미숙... 그래서는, 나에게 칼날이 닿지 않는다"

"윽..."

"힘조절은 했다. 하지만 대미지는 쌓였겠지? 사실, 일어나는 것도 어려울 터..."

"..."

 

입실론씨의 말에, 아니마는 분한 듯 고개를 떨궜다. 그 움직임을 패배를 받아들였다고 인식했는지, 입실론씨는 조용히 언월도를 내렸다.

하지만, 직후에 조용한, 그러면서도 강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빼앗고, 죽이고, 먹을 뿐인 나날이었다...."

"..."

 

등을 돌리려 한 입실론씨는, 그 말에 움직임을 멈추고 시선을 아니마에게 보냈다.

 

"...어느 날, 나는 '한 인간'과 싸웠다. 나에 비하면 너무나도 약한 몸. 손톱도 없고 송곳니도 없고, 힘없고 약한 몸 하나로, 나에게 도전해온 인간이 있었다."

"...아니마"

 

그 말이 누구를 칭하는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나와 아니마의 만남은, 확실히 그 싸움이었다.

 

"지켜야 할 자를 등 뒤로, 훨씬 격상인 존재에 대항하는 그 인간의 눈에는 강한 빛이 담겨 있었다... 강하다고 생각했어.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눈을... 마음을... 동경했다!"

"..."

"나는 약하다. 동경하던 그 인간을 따르더라도, 눈에 띄는 것은 한심한 모습 뿐. 나보다 강한 자는 산처럼 많고, 나보다 현명한 자도 많다. 그래도! 주인님은, 나를 필요하다고 해 주셨다!"

 

그 말과 함께, 아니마는 몸에 힘을 담고 일어나 다시 양 손을 겨눴다.

 

"주인님을 따르는 것, 주인님이 가시는 길을 여는 것... 그게 내 자랑이다! 포기라는 건, 있을 수 없어!!"

"...호오"

"유감이지만 나는 현명한 싸움은 못 한다... 지금 안 닿는다면! 닿을 때까지 도전할 뿐이다!!"

 

불굴의 의지를 담아, 아니마는 강하게 한 걸음 내딛었다. 입실론씨는 그걸 보고 감탄한 듯한 목소리를 냈지만... 자세를 잡지 않는다.

그리고, 조금 후, 입실론씨는 언월도를 손에서 없앴다.

 

"좋다... 그대의 승리다. 스탬프를 주지"

"...어?"

 

시원스럽게 말하는 입실론씨의 말에, 아니마는 기운 빠진 듯이 멍때렸다.

그거야 그렇지, 지금 딱 이제부터라는 느낌이었는데... 무슨 생각이지?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는 아직..."

"...다음 그대의 공격은, 나에게 닿는다. 그렇게 확신했다"

"뭐!?"

"틀림 없이, 다음 그대의 공격은 나에게 일격을 먹였을 거다. 하지만 그건 '몸을 던지는 일격'... 그대가 큰 상처를 입는 건 미야마 공도 바라지 않겠지. 그 일격을, 그대에게 대미지가 없도록 잘 쳐낼 자신이 없다. 그건 즉 내 역량 부족... 그 뿐인 이야기다"

 

어, 어쨌든, 싸움은 끝난 건가? 그럼...

 

"아니마!"

 

나는 멍하니 있는 아니마에게 달려가, 매직 박스에서 가진 세계수의 열매를 다 꺼냈다.

 

"아니마, 상처를 치료해야지!"

"네? 주, 주인님!? 저, 저는 경상..."

"얼른 먹어!!"

"ㄴ, 너ㅔ!?"

 

내 진지함에 눌린 아니마가 당황하며 세계수의 열매를 하나 먹었다. 그로 인해, 여기저기 있던 작은 상처가 나아가는 걸 보고 나는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 후로 세 번에 걸쳐 아니마에게 다른 상처가 없는가를 확인하고 있는데, 입실론씨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대의 주인은 그대가 매우 소중한가 보군... 행복하겠구나"

"...윽, 아..."

"그럼, 미야마 공. 스탬프 카드를"

"아, 네"

 

입실론씨가 하는 말을 듣고 카드를 꺼내 건네자, 입실론씨가 스탬프를 찍어 줬다.

그게 완료되자, 입실론씨는 새빨간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니마를 보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결착이 납득 가지 않는다면, '1000년 후에 재대결'을 하지. 그대는 젊고 재능이 넘친다. 1000년 정도 후라면 핸디캡 없이도 호각으로 싸울 수 있겠지"

"...알겠다. 입실론 공. 천년 후에 재도전을 하지"

"...기대하고 있겠다. 미래의 강자여"

 

그 말만을 하고 입실론씨는 다시 내게 고개를 숙인 후 투기장 중앙으로 가, 처음과 같이 정좌를 하고 눈을 감았다.

뭔가, 멋있는 분이다. 응, 콩씨랑 전혀 다르다.

 

어머니, 아버지 ―― 아니마가 싸우는 동안 너무 애가 탔고, 지금까지 계속 도움만 받았어. 에덴씨, 판도라씨, 아니마... 대리에게 맡기기만 하고, 이대로 메기드씨한테 가도... 정말 괜찮을까? 아니마가 너덜너덜해지면서도 저렇게 노력했는데. 그럼 나도 주인으로서... 적어도, 한 번 정도는 ―― 싸워야 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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