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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꾸는 남자는 현실주의자
4화 : 보통 사람의 선언
"좋아해. 사귀어 줘"
엄청 멋있는 얼굴로 아이카에게 마음을 전했다(그럴 생각이었다). 일생일대의 고백이라고 하기에는 비슷한 소리를 너무 많이 했다. 이미 아이카에게 익숙한 말일 거다.
눈 앞의 미소녀의 상태를 살피며, 화려한 양파 스프를 입에 넣었다. 긴장으로 맛이 안 나고 전혀 목이 축여지지 않는데... 미안 엄마.
"하, 하아!? 무슨 소리야! 너 같은 녀석이랑 사귈 리가 없잖아!"
응, 알고 있었어. 그렇지.
"야... 우리 언제부터 이름을 부르게 됐더라"
"뭐야 갑자기.... 이름? 아마 중학교 때... 아니, 맘대로 부르지 마! 나는 그런 거 허락한 적 없어!"
그렇지. 확실히 허락을 받은 기억은 없다. 남자친구인 척 쩔었다.
"...그렇지, 맞아"
이게 현실이다. 내가 지금까지 등을 돌리고 있었던 것. 중학교 때부터 그럴 리가 없다고 꿈만 꾸던 나. 그 꿈에서, 설마 축구공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 같은 걸로 깰 줄이야. 그리고 거울, 너는 너무 잔인해. 19금이야.
"아니 미안하다, 나츠카와"
"이제 와서 사과───어?"
갑자기 성으로 불러 멍해진 아이카, 아니 나츠카와. 그야 그렇지. 몇 번이나 그만하라고 했는데도 말을 안 듣더니, 이제 와서 갑자기 말을 들으니 놀라겠지.
나츠카와는 이 쪽으로 손가락을 뻗은 채로 굳어버렸다. 그런 모습이 웃겨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씨익 흘러나왔다. 아니 이거 흘러나온 느낌 아니지 않나?
거울을 봐도 나츠카와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그녀를 손이 닿지 않는 아이돌로 보는 것은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봤다고 이 마음을 전부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까, 이 욕심 과한 감정은 용서받을 수 없다.
"쳐도 소리가 안 나고, 때려도 달라붙는다. 정상적으로 생각하면 머리 이상하지"
"어, 어어... 가, 갑자기 뭔데..."
"그야───"
"나 왔어~"
말을 이어가려고 했는데, 느긋한 목소리와 함께 거실 문이 세게 열렸다. 양아치처럼 들어온 건, 올해 수험생인 우리 누나, 어깨에 맨 가방을 던지고 가디건을 벗었다.
"왔어 누나. 놀라니까 살살 들어와"
"하아~ 진짜 힘들어. 와타루 마실 거 좀──아"
오자마자 소파에 뛰어드는 누나. 이름은 카에데. 그 이름에 알맞는 털털함에 한숨을 참을 수 없다. 이런 누나를 보고 자란 것도 나츠카와를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일 거다. 참한 모습이 좋다.
그런 무사태평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무래도 누나가 나츠카와의 존재를 발견한 것 같다.
"와, 와타루가 여자애 데려왔어!!?"
좀 다르게 말할 수 없어? 목소리가 크다. 이건 옆집까지 들리지 않았을까? 오해가 퍼지는 건 봐 줬으면 좋겠는데...
몇 초 후, 누나를 학원에 데려가려고 온 엄마가 누나 목소리를 듣고 뛰어들어왔다. 나와 나츠카와가 거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걸 보고, 기운이 빠진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설마 우리가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한 건가...
"헛ㅎ갈리잖아 바보야!"
"아파!? 그, 그게~!"
오, 오오. 엄마가 화내는 걸 오랜만에 봤다. 확실히 누나의 외침이 엄청났으니까.
엄마는 누나 머리를 때리고, 흐트러진 플리스 재킷을 다잡으며 바깥 사람들에게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아, 안녕. 와타루 친구니?"
"고등학생한테 할 인사가 아니지 않나?"
"잠깐 넌 가만 있어 봐!"
오늘 엄마는 이상하게 감정적이다. 누나와 둘이서 자세를 잡고, 나츠카와를 위에서 아래로 유심히 본다. 그 엄마에 그 딸, 아 그럼 나도 그런건가. 정말 실례스러운 가족이구나 참. 좀 하지 마, 품평같은 거 진짜 하지 마!
"아니 엄청 귀엽잖아! 설마 와타루 여자친구 아니지!?"
"그럴 리가 없잖아 우리 딸 바보니? 저 상태를 봐! 뭔가... 뭔가 그런 게 아니잖아!"
"그치! 아무리 그래도 와타루한테는 너무 아깝지!"
눈치가 빠른 건 말 할 게 줄어서 편한데 정말 지들 맘대로 말한다. 진짜 가족인가? 사실 나는 친척 애라서 나를 싫어하는 거 아닌가? 아니 잘 생각해 보면 이런 건 평소대로였다. 전혀 화가 나지 않는다. 진짜 강철 멘탈.
그건 그렇고, 이걸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알앗을 거다.
"───그렇댄다, 나츠카와. 이렇게 누구나 알고 있는 걸 나는 지금까지 몰랐어. 좀만 생각하면 바로 알 수 있는 건데 말이야"
"...어?"
"때리면 소리가 나고, 맞으면 그만큼 날아가야지. 싫어하면 더 이상 다가가지 않고. 인간 관계는 보통 그런 거겠지"
분면 나 스스로도 어디선가 계속 위화감을 안고 있었던 거다. 나츠카와 아이카를 좋아한다. 하지만, 막상 사귀게 됐을 때 자신과 그녀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다. 그건 왜일까?
아무리 상상해도 옆에 서 있는 둘이 안 어울리기 때문이다. 굳이 용모에 격차가 있는 잔혹한 광경을 상상한다는 괴롭힘을 나 스스로 할 리가 없다.
적어도 지금은 사람에게 얼굴이나 운동신경 등 태어나서부터 격차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내 분수를 자각할 수 있게 됐다───긴 꿈에서 깨어나, 나는 어느샌가 버려두고 있었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거다.
"그러니까, 그런 '당연한' 걸 받아들이고 분위기 파악을 할 거야. 평소보다 좀 더 침착하게 행동할 테니까, 잘 부탁해"
"자, 잘 부탁한다니... 너...."
그렇게 말은 딱 했지만, 나츠카와 같은 드라마 여주인공 같은 미소녀가 아니라도 나름대로 청춘을 구가하는 잡것들은 있다. 자기 분수 파악만 하면, 나도 이 학생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거다.
여기는 한 번, 내 5,60배 분수를 가진 그녀의 힘을 빌려서.
"───그러니까, 나츠카와 친구 중에 나한테 맞는 애 없어?"
"뭐...!? ~~!!"
"어, 어라...?"
어깨를 부들부들 떠는 나츠카와. 아무리 봐도 화가 난 걸로밖에 안 보인다. 미소녀에게 눈총을 받은 소시민인 내가 모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용기는 없다. 좀 더 차가운 느낌으로 어이없다는 얼굴을 해 주면 좋겠는데...
"───최악이야!!!"
"우와!?"
싸대기를 맞을 줄 알았던 나는 당황해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나츠카와는 그러지 않고 양손으로 거실 테이블을 거세게 내리친 뒤 빠른 걸음으로 현관으로 가버렸다. 한 박자 늦게 당황해 따라갔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빨랐다.
"야, 야 나츠카와!"
"시끄러워 바보야!"
따라가려고 해도, 나츠카와는 평소처럼 내 손을 후려치고 가버렸다. 마지막에 보인 건 그녀가 골목을 꺾어 전력으로 도망가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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